논리적 오답과 비논리적 정답
감정의 회오리에 숨겨진 자아 정체성
이 이야기는 행복과 슬픔의 감정 가운데 자아 정체성을 찾아간 이야기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정을 느낀다. 감정은 고민을 수반하기도 하고, 우리를 이리저리 요동하기도 한다. 감정의 회오리에 휘말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반추하여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하 자아 정체성)이 무엇인지 찾아낸다면,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보다 매끄럽게 헤쳐 나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자아 정체성은 한 개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평생 똑같을 수도 있고, 해가 지날 때마다 바뀔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평생 자아 정체성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확실한 사실은 인간은 최소한 한 개의 정체성을 가진단 점과, 그 정체성을 알면 앞으로의 인생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단 점이다.
행복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가'를 정의해보면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인간은 자기 연민을 지니고 살기에 아무래도 슬픈 감정보단 행복한 감정에서 자신을 찾기 더 쉽다. 이때 가짜 행복을 주의해야 한다. 아래 도라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가짜 행복은 무엇이고 진짜 행복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도라는 집에서 홀로 게임을 하며 '와, 이게 행복이지!'라고 생각했다. 만족할 만큼 게임을 한 도라는 게임을 껐다. 게임을 하던 중과 달리 게임을 끈 후엔 퀭한 눈과 약간의 두통만 남긴 채 아무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도라는 우아한테크코스에서 페어와 함께 불꽃 튀는 토론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며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쏟아져 나옴을 느끼며 '왜 이렇게 행복하지?'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게임이 끝나고 나서도 잊을 수 없는 고양감과 자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도라는 그러하지 않았다. 게임이 주는 행복은 도라의 정체성에서 우러나온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라에게 1번은 가짜 행복이다.
반면, 토론은 끝나고 나서도 도라에게 장기적인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도라는 본인이 한 층 더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라의 내면이 원하는 무언가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를 찾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면이 바라는 무언가를 충족한 2번이 도라에게 진짜 행복이었단 점이다.
진짜 행복을 안겨준 '무언가'(이하 요소)를 돌아보며 우리는 정체성을 찾아나갈 수 있다. 그 요소는 굉장히 복합적일 수도 있고, 꽁꽁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한 겹 한 겹 들춰 나가며 탐색해 나가야 한다. 도라의 이야기를 이어서 들어보며 그 과정을 살펴보자.
도라는 토론이 행복했던 이유로 아래와 같은 요소들이 있으리라 정리해 보았다.
1.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전달해서
2.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말해서
3.
상대의 성장에 도움을 주어서
4.
상대와 함께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서
네 가지 중 도라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토론 외에도 도라에게 행복을 안겨준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이어 말할 슬픔을 준 사건들을 늘어놓았을 때 보이는 공통적인 요소가 도라의 정체성이다.
슬픔
여기서 논할 슬픔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사회적 슬픔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특히 불편해하는 사람인가'와 관련한 개인적 슬픔을 다루고자 한다. 이번에도 도라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개인적 슬픔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도라는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옆을 보니 같이 보던 친구도 울고 있었다.도라는 논리적이지 않은 말을 할까 두려워 말을 못 꺼낸 자신을 보고 슬펐다.
1번의 슬픈 영화는 사회적 슬픔이라고 납득하기 쉽다. 반면 2번은 살짝 애매하다. 언뜻 보기엔 다른 사람들도 공통적으로 느낄만한 사회적 슬픔 같기도 하다. 2번이 개인적 슬픔인 이유는 아래 도라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며 이해할 수 있다.
도라는 자신이 논리정연하게 적은 글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자 슬픔을 느꼈다.도라는 상대의 논리가 아직 납득되지 않은 채로, 상대의 주장대로 결론이 나버리면 불편했다. 반면 상대의 반박이 충분히 논리적으로 다가왔다면, 설령 도라의 주장과 반대되는 결론이 나더라도 불편하지 않았다.
3번과 4번까지 살펴봤을 때, "논리 없는 의견에 슬픔을 느낀다"라는 도라만의 컨텍스트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는 도라의 개인적 슬픔이다. 앞서 언급한 행복에서 뽑은 요소 중 '2.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말해서'와도 같은 컨텍스트다. 이제 도라의 정체성을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논리적 오답을 택해 얻은 회복 탄력성
도라는 논리적 오답과 비논리적 정답 사이에서 논리적 오답을 택하는 사람이다. 설령 오답을 고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정체성은 논리적인 과정을 필요로 한다. 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한 후 이전보다 슬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회복 탄력성과 직결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곧장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기 때문이다.
앞으로 도라는 논리에 대한 탐색을 해볼 수 있다. 곧 그녀는 논리란 상대적인 개념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주장이 설령 당장에는 논리적이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이를 존중해야 한단 점을 배워나간다. 회사에 가선 빠르게 돌아가는 메커니즘 속에 동료가 논리적으로 비약한 주장을 하더라도, 그녀는 그 속에 그만의 논리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슬퍼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아 정체성을 한 번 고민해 보면 좋겠다. 운 좋게 이를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의 인생은 상당히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